해외 한달살기 3 "쿠알라룸푸르는 생각보다 힙한도시. 하지만 맥주는 팔지 않지!" ft. REXKL, 난도스
쿠알라룸푸르에서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하고 싶은 것은 딱히 없었고 무언가 하려는 생각으로 온 것도 아니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왜일까. 그러다가 문득 호텔 방에서 밖을 쳐다보면 보이는 모노레일을 타보고 싶어졌다. 물론 해가 질 무렵 야경 구경을 겸해서 말이다.
그전에 점심은 가볍게 배달음식을 시켜봤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명 체인이라는 난도스. 여기저기 블로그에도 후기들이 많은 곳이었고 매콤한 맛과 불향이 가득하다고 해서 그랩으로 배달시켜봤는데.. 생각보다 그럭저럭이어서 아쉬웠다. 가격은 35링깃(만원 정도). 아마도 치킨의 영원한 단짝, 맥주가 없어서였을 것 같기도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매운맛이 아니어서가 큰 원인 아니었을까. Very Hot 시킨 것인데 막 저세상 맛처럼 써져있는 최강 매운맛을 골랐어야 했나 보다.
그랩 딜리버리는 굉장히 편리하고 신속하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이 사용했고 그랩 페이도 많은 환전이 필요 없는 여행을 만들어주었다. 최소 충전금액은 20링깃인데 33링깃(만원)씩 두 번 충전했던 것 같다.
수영장에서 잠깐 쉬다 보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볼 시간.
포포인츠 쿠알라룸푸르 주변에는 역이 두 개가 있다. 파사르세니(Pasar Seni)역과 호텔 남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있는 마하라자렐라(Maharajalela)역. 이 마하라자렐라역에 놀이공원에서 탔던 것 같은 모노레일이 다니고 있다. 이 노선은 KL센트럴이라는 쿠알라룸푸르 기차역을 시작해 부킷빈탕, KLCC근처를 지나가는 노선이고 전 구간 지상이라 야경 구경하기엔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금은 1.5링깃, 바로 옆 역을 기계에 찍고 티켓을 발권했다.
해질 무렵이라고 생각해서 탑승했으니 어쩌면 예견되었던 일이었는데 생각하지 못했던 포인트. 퇴근시간이었다. 사람이 정말 많아서 여유로운 야경 구경을 할 수는 없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벽화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외 부킷빈탕의 복잡한 교통체증도 보고 여기저기 건물들 불 들어온 것도 봤다. 생각보다 긴 구간이 아니어서 왕복했는데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별생각 없이 다니니 이 도시에서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 나기도 했다. 미련이나 후회 같은 것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일까..
다시 마하라자렐라역으로 돌아와서 차이나타운의 마지막 밤을 걸어보았다. 그러다가 첫날부터 눈에 들어왔던 복합 문화공간 건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름은 REXKL.
사실 지나가면서는 왜인지 명동 눈스퀘어 건물 같은 느낌이라 식당하고 쇼핑몰들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웬걸.. 안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총 4층의 건물에 중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메자닌 층이 있는 7층 정도의 건물. 입구층의 식당, 카페, 와인바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 별마당 도서관 같은 형태의 서점이 있었다. 그것뿐인가 넓게 비워진 공간이 있어서 디제잉도 하고 공연도 하는 것 같았고 제일 꼭대기 층에는 테라스 와인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층에 내려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켜서 자리를 잡았고 다들 신나 있었는데 뭔가 나는 그렇게 신나지는 않았던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도 힙한 공간이 존재함에 놀라웠다.
건물의 소개는 이렇게 하고 있었는데, 원래 영화관이었던 공간에 긴 시간을 두고 두 번 화재가 발생했고 다시 꽤 오랜 시간(17년) 뒤, 영화관으로서 용도를 상실한 이곳. 그리고 오래되어 활성화되지 못했던, 잊혀질 예정이었던 이곳을 두 명의 기업가가 되살리기로 결정하고 문화적 허브이자 예술공간으로 뒤바꿈 시켰다고 한다. 쭈욱 읽고 나니 인사동의 쌈지길이 생각났다. 물론 지금 예전의 힙함을 유지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아래는 REXKL의 홈페이지, 쿠알라룸푸르에 간다면 한번 방문해 볼 법하다.
이렇게 무미건조한 밤을 보내고 어느덧 쿠알라룸푸르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아쉬웠던 포인트는 맥주(?응?)가 아니었을까? 왜 가게에서 이렇게 맥주를 안 파는 것인지.. 그냥 난 반주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 밥은 밥대로, 술은 술대로 먹어야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시내 나가면 맥주를 판매하겠지만 그냥 난 슬리퍼 찍찍 끌고 나가서 동네 식당에 가듯이 맥주 한잔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식당에서도 대부분 맥주를 먹지 않았다. 물론 종교적 이유가 클 테지만 참 아쉬웠던 쿠알라룸푸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호텔 앞 식당의 아침 식당들이 있어 정말 좋았던 여행이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관광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제 페낭행 버스를 탄다. 다섯 시간 걸린다고는 하는데.. 느낌이 좋지 않다. 차가 밀리고 있다. 그리고 자꾸 어딘가에 멈춘다. 찝찝하다.